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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 Travel

강화역사관

강화 역사관은 인천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에 자리한다. 강화도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유물들을 전시하는 역사관으로 1988년 개관했지만 현재는 폐관돼 ‘갑곶돈대’로 명칭이 변경됐다. 4개의 전시실을 갖췄던 이곳은 보물 제 11호인 <강화동종>을 비롯해 1849년 조선 헌종 때의 <왕실행렬도>, 구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의 토기 및 청동검 등 169점의 유물을 소장했다. 하지만 2010년 강화읍에 강화 역사 박물관이 건립되면서 변화가 생겼다. 강화 역사관은 폐관되면서 갑곶돈대로 이름이 바뀌었고, 유물들은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1679년에 만들어진 갑곶돈대는 몽고와의 줄기찬 항전과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 수도의 관문인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로 사적 제306호다.

정수사

보문사, 전등사와 함께 강화의 3대 고찰 중 하나이다. 639년(신라 선덕여왕 8) 회정선사가 창건하여 정수사(精修寺)라 하였던 것을 1423년(조선 세종 5) 함허대사가 중창하여 법당 서쪽에 맑고 깨끗한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마니산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법당(보물 제161호)의 후면 공포는 건축 당시의 세부 건축 형식을 가장 잘 보여 주고 꽃문살의 독특한 아름다움은 널리 알려져 있다 . 1957년 법당을 보수공사하던 중 1688년(숙종 15년) 수리 당시의 상량문이 발견되었는데, 상량문에 의하면 1423년에 중창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갑곶돈대

강화대교를 건너자마자 왼편으로 자리 잡은 첫 유적지가 갑곶돈이다. 1232년 고려가 강화로 천도한 이후 1270년까지 몽골과의 줄기찬 항전을 계속하며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였다. 강화의 관문으로 적진을 살필 수 있는 진해루가 있었으며, 물살 건너편의 문수산성 서쪽 성문인 취예루를 마주하고 있었다.

보문사

남해 보리암, 낙산사 홍련암과 함께 우리 나라 3대 관음도량인 이곳 낙가산 보문사의 이름을 풀어 보자. 경전에 의하면 관음보살이 머무는 남해(南海)의 섬이 낙가(洛迦)이고, 광대무변한 서원을 실천하는 몸과 장(場)이 보문(普門)이다. 따라서 낙가산 보문사는 그대로 관음보살의 터전이고 상징이다.

석모도

석모도는 면적 42.841km2, 해안선 길이 41.8km이고, 최고점은 상봉산(上峰山, 316m)이다. 해명산(309m), 낙가산(267m), 상봉산(316m) 등 높은 산이 연결되어 있다. 주민은 1,138가구 2,216명이 살고 있다. 석모도(席毛島)는 강화군 외포항에서 서쪽으로 1.2km 떨어져 있다. 수도권 시민들에게 꽤 알려진 유명한 관광지로 가족나들이 섬으로 적합하다. 한반도와 강화도 섬을 잇는 강화대교와 초지대교 덕분에 잘 만들어진 도로를 달릴 수 있어 부담 없이 찾는 이들이 많다.

화문석문화관

강화도에서만 생산되는 순백색의 왕골로 만들어진 꽃무늬 돗자리를 화문석(花紋席)이라고 한다. 전국 유일의 강화화문석이 언제부터 제작되기 시작했는지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고려 중엽부터 가내수공업으로 전수되어 발전했다고 한다. 고려시대 강화는 39년 동안 고려의 수도 역할을 하면서 강화로 이주한 왕실과 관료들을 위해 최상품의 돗자리를 만들었다.